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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도

친구님들 혹, 바람결에라도 제 서툰 노랫소리가 실려 오거든 한번 돌아보아 주세요. 글은 세상에 남기는 빚일지도 모릅니다. 지우고 지워도 모자랄 판에 엄연한 업장을 새로이 쌓는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어차피 이내 사라져버릴 시간의 흐린 그림자에 불과한 인생에 뭘 남기겠다는 욕심이라면 그것처럼 부질없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수긍이 갑니다. 어느 환경운동가의 말처럼 펄프만 낭비함으로써 자연을 훼손하고 세상에 공해를 남기는 죄업을 짓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낙선에 낙선을 거듭할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수백 매의 원고가 노래 한 토막만도 못하다고…. 그러나 삶에는 스스로 안고 가야 할 것과, 반드시 해소해 주어야 할 여한 내지는 풀고 가야 할 매듭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통과의..
친구님들 혹, 바람결에라도 제 서툰 노랫소리가
실려 오거든 한번 돌아보아 주세요.

글은 세상에 남기는 빚일지도 모릅니다. 지우고 지워도 모자랄 판에 엄연한 업장을 새로이 쌓는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어차피 이내 사라져버릴 시간의 흐린 그림자에 불과한 인생에 뭘 남기겠다는 욕심이라면 그것처럼 부질없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수긍이 갑니다. 어느 환경운동가의 말처럼 펄프만 낭비함으로써 자연을 훼손하고 세상에 공해를 남기는 죄업을 짓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낙선에 낙선을 거듭할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수백 매의 원고가 노래 한 토막만도 못하다고….
그러나 삶에는 스스로 안고 가야 할 것과, 반드시 해소해 주어야 할 여한 내지는 풀고 가야 할 매듭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통과의례라고 부르고 그 통로가 문학과 예술이라고 믿습니다. 그다지 변변치 않은 것이었지만 내 삶을 통해서 겪었던 갈등과 고통, 애착과 증오, 육친의 죽음과 관계의 소멸 등등…. 현실에서 미처 씻어내지 못하고 풀어내지 못한 그것들을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씻어내고 풀어내서 세상 떠날 때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통과 의례, 그것이 내게는 문학이었기를 바랍니다.
필명으로 고벽古碧을 쓰기도 했다. 페이스북 플필명은 지금도 ‘고벽’이다. 전북 정읍에서 출생, 정읍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재수, 삼수 끝에 입시에 뜻을 잃고, 소설이나 쓰자고 작심, 원광대 국교과, 대학원 국문과에 들어갔다. 교지 소설 당선, 대학신문 소설 당선, 대학신문 소설 연재 등으로 간이 부어 은사의 문예지 추천도 마다하고 신춘중편과 문학상 공모전에만 도전했다가 연전연패 쓴맛을 본다. 이후 조우한 판소리에 빠져 2년의 석사과정을 리밋인 5년 만에, 3년의 박사과정을 역시 리밋인 10년 만에 겨우 학위를 받고 마친다. 그도 그럴 것이 판소리 <흥보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강도근 선생에게 3년여에 걸쳐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완판을, 판소리 <심청가> 인간문화재였던 조상현 선생에게 8년여에 걸쳐 <춘향가>, <심청가> 완판을 학습하고 익히는데 하루 5시간 이상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에는 서울전국국악경연대회, 고흥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명창부에 출전하여 각각 입상하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도 40년간 중등학교 교사로 호구를 했고, 10년 가까이 전남대 강사를 하기도 했으며 한때 판소리학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에도 간간이 공모전에 냈으나 역시 고배를 삼켜야 했고 그 공백을 술과 판소리로 메우는 삶을 살았다. 여수해양문학상에 중편소설로 우수상, 공무원문예대전에 시로 은상을 받기도 했다. 퇴직 후 20년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나 퇴직에 임박하여 갑작스럽게 ‘복막전이가 상당히 진행된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44번의 항암치료를 거치며 2년 가까이 투병 중이다. 40년 세월 각고의 수련 끝에 조립단계만 남은 판소리 전체 5바탕 완창과 평생 구상하고 준비한 장편소설 등의 결실을 볼 수 없게 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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